2016년 5월 27일 금요일

꽃을 잃고 나는 쓴다 [강경애]~

꽃을 잃고 나는 쓴다 [강경애]한국의 자전적 소설이 나오게 된 배경방민호 교수가 ‘한국의 자전적 소설’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어낼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1997년의 일본 여행길에 일본의 비평가 나카무라 미쓰오[中村光夫]의「풍속소설론 ― 근대 리얼리즘 비판」을 읽은 뒤부터였다. 그 글은 사소설(私小說)이라는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 양식에 의거한 일본 문학사를 서술하고자 하는 의욕적인 비평이었다. 나카무라에 따르면 1906, 7년경에 뚜렷하게 형성된 일본의 ‘고유한’ 현대소설 장르로서 사소설은 작가가 자기 경험을 ‘그대로’ 쓴다는 점에서 작가가 허구를 통해 자기의 사상을 표현한다는 의미의 서구 소설과 구별되는 것이었다.사소설은 ‘그대로’ 쓴다는 이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작가의 사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 세계와 현실에 관한 객관적 진실, 즉 사실을 파지한 사상을 추구하는 대신에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쓴다는 경험적 진실의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일본의 사소설이라는 것이었다나카무라는 이러한 일본풍 리얼리즘(=사소설)이 일본 문단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된 과정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것에 도전한 신감각파와 프롤레타리아 문학조차 기실 사소설의 방법론에 기대고 있었으며 따라서 일본 근대소설의 특징과 약점은 전혀 극복되지 못한 채 후대로 이어져 간다고 주장했다.여기서 서양과 일본의 소설이 다른 점은, 서양에서는 작가가 사회나 시대를 총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그러한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비해 일본에서는 작가가 자기 자신을 직접 문제적 개인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소설에서 사회나 시대는 충분히 객관화되지 못한 채 작가 자신의 주관에 투영된 객관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작가 자신이 작품의 유일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카무라가 말한 일본 사소설의 근본적인 한계다.한국의 현대소설에서는 이러한 사회와 개인의 문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근대화 과정 자체는 곧 식민지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즉 형성기 한국의 현대소설은 식민화 과정, 식민지 상태에 놓인 사회의 소설이었다.이 시대에 한국의 작가는 그들 자신 ‘선택받은’ 사람이었고 남다른 개인이었지만 그들 앞에 놓인 절박한 문제는 조국의 식민지화 또는 식민화된 조국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 특별한 개인으로서 그들 자신의 문제를 놓고 고민해야 했으나 동시에, 또는 그보다 앞서, 그들 앞에 놓인 조국의 현실 및 상황을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양상을 가장 문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당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시대 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신음하고 나아가 자기를 가장하거나 은폐하기까지 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이유로 삼아 울지 못한다. 방민호 교수는 이 책의 해설에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표현한다고 하는 순진한 에고이스트가 한국의 작가 가운데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것이 “한국의 자전적 소설이 일본의 사소설 전통과 확연히 다른 점”이며, 바로 이 같은 점에 착안해 ‘한국의 자전적 소설’을 정리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 책의 구성과 특징첫째, 여기 실린 작품들을 보면 일제하 당대 최고의 수준급 작가들은 한결같이 자전적 소설 창작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둘째, 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작가 자신의 표현 내지 해명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당대 사회의 성격이나 양상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둘째,조선의 작가들은 많은 경우 자기 이야기를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는 것으로 취급하지 않고 시대 현실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셋째, 일제시대 한국의 자전적 소설은 그 양적인 풍부함에 비례하여 이야기의 자전적 수준 또는 자전화 방식 면에서 실로 다양하고 풍부한 양상을 보여준다.'왜, 어데 가시나요?'A와 마주 앉은 나는 물었다.'......글쎄요. ......남으로 향할지 북으로 달릴지 모르겠소이다.'A는 말을 맺고 머리를 창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A군은 오늘 부친께 선언을 하고 영원히 나섰다는 게리오. 하하하.'Y가 설명을 하였다.'하하하, 그것 부럽소이다그려. ......영원히 나섰다는-그것이 부럽소이다.'나는 이같이 한마디 하고 A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뜬 A는 바로 앉으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표본실의 청개구리/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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