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7일 화요일
판타스틱 개미지옥 [서유미]~
판타스틱 개미지옥 [서유미]경쾌한 필치로 그려낸 시대의 자화상자본의 힘이 빛을 발하는 곳, 백화점. 팔려 나가기 위한 물건이 존재하고 그 물건을 사러 오는 돈 있는 손님이 있고,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은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한 자본주의 세계에 넋을 잃은 직원들은 그곳에 다시 자신들의 돈을 쏟아 붓지만, 그런다고 해도 그들이 물건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화려함 속에 있다 보면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들이 팔고 있는 브랜드와 일체화된 감정을 느끼고 만다. 그것은 곧 파멸의 시작일 뿐이지만 그것을 그리 쉽게 깨닫지는 못한다.『판타스틱 개미지옥』은 욕망의 덩어리가 똘똘 뭉쳐 화려한 조명 밑에서 어둠을 만들어내는 백화점이란 공간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간 군상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이 소설은 백화점에서 행해지는 열흘간의 세일 중 사흘 동안을 그리고 있다. 백화점 화장실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을 제시하고, 사흘 동안 각 인물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추적하며 인물 각자가 어떤 수렁에 빠져 있는가를 보여준다. 화려한 조명에 길을 잃은 개미들의 삶소영은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집안에 생활비를 보태야 할 형편인데도 명품 가방과 지갑을 할부로 사고 카드가 정지되어 손발이 묶여 버렸다. 역시 의류매장에서 장기 아르바이트 중인 윤경은 대학을 휴학 중이다. 매장에서 대학 친구들을 만난 뒤 자괴감에 빠져 버렸다. 계산원으로 일하는 지영은 백화점 옷을 입어 보기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한다. 의류매장에서 일하는 미선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대학 시험을 준비 중이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정민은 남자 고객에게 화장품 선물과 함께 수상쩍은 유혹을 받는다. 이들은 화려한 환상 속에서 상품에 예속되어 가며 스스로 상품과 같은 가치를 갖고 있는 듯 착각하지만, 사실 백화점에서 이들의 지위는 상품보다 낮다. 이들은 단지 상품을 파는 도구일 뿐이다. 이들의 인간관계도 그 정도 수준에서 이루어져, 세일 기간에만 낯을 익히고 서로를 브랜드 네임이나 매장 명으로 부르다가 세일이 끝나면 미련 없이 헤어져 버린다.이들 외에도 백화점에 얽혀 환상에 잠기는 사람들이 있다. 백화점을 주위를 맴돌며 상품권 매매를 하는 영선은 자신을 옥죄고 있는 자본과 욕망을 혐오하지만 백화점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주워 먹고 산다. 비록 백화점과 규모는 달라도 역시 상품과 돈의 다리 역할을 하는 마트 판매원 현주는 스트레스를 풀러 백화점에 온다. 한 사람의 손님으로서 판매원들보다 위에 있다는 우월감을 만끽한다. 제각각으로 보이는 이들을 하나로 엮는 것은 인기리에 판매되던 카디건. 세일이 시작됨과 동시에 몇 장 남지 않은 카디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은밀한 다툼이 이들의 행적을 이어주고 사건을 하나로 묶는다. 치밀하게 짜인 스토리가 마치 퍼즐 조각처럼 제자리를 찾아가며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자본과 상품과 다이어트와 쇼퍼홀릭이 잘 비벼진 비빔밥 같은 백화점은 숨겨두었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백화점은 사람을 좀 이상하게 만들었다. 가방 앞에서 살까 말까 망설일 때만 해도 가방만 사고 나면 모든 갈증이 다 사라질 것 같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고 더 이상 사고 싶은 것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겨우 며칠 사이에 사고 싶은 게 또 생기고 자꾸 목이 마르다. 바닷물을 퍼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본문에서화장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슬슬 불안함이 몰려왔다. 자신에게 허락되었던 즐거움이란 딱 화장품의 용량 만큼이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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